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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1-02 23:14
저무는 이 한해에도 (이해인 수녀님)
 글쓴이 : 윤승로
조회 : 2,737  
 

저무는 이 한해에도 / 이해인 수녀님 (각색)


노을빛으로 저물어가는 이 한 해에도

제가 아직 살아서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할 수 있음을

사랑하고, 기도하고, 감사할 수 있음을

들녘의 볏단처럼 엎디어 감사드립니다


아쉬움과 후회의 눈물 속에 초조하고 불안하게 서성이기 보다는

소중한 옛 친구를 대하듯 담담하고 평화로운 미소로

떠나는 한 해와 악수하고 싶습니다


색동설빔처럼 곱고 화려했던...

새해 첫날의 다짐과 결심들이

많은 부분 퇴색해 버렸음을 인정하며

부끄러운 제 모습을 돌아봅니다


허영과 교만과 욕심의 때가 낀

제 마음의 창문은 게을리 닦으면서

다른 이의 창문이 더럽다고 비난하며

가까이 가길 꺼려한 위선자였습니다


처음지녔던 진리에 대한 갈망과

사랑에 대한 열망은

기도의 밑거름이 부족해

타오르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침묵의 어둠 속에서 빛의 언어를 끌어내시는 생명의 주님!

지난 한 해 동안 당신이 선물로 주신

가족 친지 이웃들에게 밝고 부드러운 생명의 말보다는

칙칙하고 거친 죽음의 말을 더 많이 건네고도...

제때에 용서를 청하기보다

변명하는 일에 더욱 바빴습니다


제 일상의 강 기슭에

눈만 뜨면 조약돌처럼 널려 있는

사랑과 봉사의 기회들을 지나쳐 간

저의 나태함과 무관심을 용서하십시오


사랑하는 방법도 극히 선택적이며...

편협한 옹졸함을 버리지 못한 채로

보편적인 인류애를 잘도 부르짖었습니다


여기에 다 나열하지 못한...

저의 숨은 죄와 그 잘못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

당신과 이웃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걸어온 순례의 길 위에서

동행자가 되어 준 제 이웃들을 기억하며

사람의 고마움과 삶의 아름다움을 ...

처음인 듯 새롭게 하는

소나무 빛 송년이 되게 하소서


저무는 이 한 해에도

솔잎처럼 푸르고 향기로운 희망의 노래가

제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와

희망의 새해로 이어지게 하소서..........